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 (문단 편집) === 이승엽, 정말 와도 자리가 없었는가? === 선동열이 경질된 이후, 우승 시즌인 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1루수는 [[라이언 가코]][* 사실 순수 1루수라기 보단 지명타자 겸업이었다.], [[채태인]], [[조영훈]], [[모상기]] 등이 번갈아가며 맡았지만 '''네 명 모두 2할 5푼 미만의 타율을 기록'''했으며 '''4명이 합쳐 16개의 홈런을 기록'''했다. 참고로 이 해 이승엽이 '''[[일본프로야구]]에서''' 기록한 홈런이 '''15개''' 였다.[* 물론 타율은 .201로 [[멘도사 라인]]급 타율이었으나, 2011년 NPB가 통일구로 인한 투신타병급 리그였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으며, 저 네 명의 타율들도 1할 9푼~2할 4푼 대로 거기서 거기였다. 당연한 얘기겠지만, 똑같은 2할도 NPB에서 기록한 2할은 KBO랑 큰 차이가 난다.] 물론 전 해 괜찮은 활약을 보였던 조영훈이 낮은 타율을 기록한 점과 용병은 로또라는 점을 들며 결과론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, [[조동찬]]은 이미 수년간 유리몸으로 악명 높아서 [[박석민]]의 3루 전업은 예상된 수순이었고 채태인 역시 뇌진탕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타율이 추락하고 있었으며, 조영훈은 풀타임 선발을 뛰어본적이 없으니 당연히 체력적인 문제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. 사실 이는 잠재력이 있는 [[채태인]]을 밀어주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다. 나중에 이승엽이 복귀를 하면서 채태인과 [[지명타자]]와 1루수 자리를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, 팀 입장에서는 그만큼 유망주를 키우기 힘든 환경이 된다. 실제로 지금과는 달리 당시 삼성에서는 기회만 주면 주전이 될 수 있었던 선수가 많았다. [[배영섭]], [[박해민]], [[구자욱]]이 그 예. 심지어 삼성팬들에게 무명이었던 [[김종호(야구선수)|김종호]]는 [[NC 다이노스]]에서 포텐이 터졌다. 결국 이승엽도 어느 정도 인지했는지 2015년 FA 계약을 하면서, 2017년에 후배들을 위해 은퇴하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예고했다.[* 그러나 2016년 활약을 감안하면 2017년 은퇴를 그룹차원에서 만류할 가능성도 있다. 하지만 결국 이승엽은 2017년 10월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넥센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.] 이후 [[류중일]] 감독 체제가 굳어진 2012년에서야 [[이승엽]]은 삼성에 복귀할 수 있었고[* [[오릭스 버팔로즈]] 입단은 선동열의 경질이 확정되기 전에 이루어졌다.] 20홈런 타자가 5명밖에 없고 3할타자는 13명에 불과했던 심각한 투고타저 속에서도 .307/.384/.502의 타율/출루율/장타율[* 각각 공동 6위/10위/6위를 기록했다. 타율에서 이승엽과 공동 6위를 기록한 타자는 [[이진영]].]과 21홈런(5위), 85타점(3위), 150안타(4위)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고, 특히 [[2012년 한국시리즈|한국시리즈]]에서는 1차례의 본헤드플레이가 있기는 했었어도, 23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7타점 4득점, .348/.423/.609 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생애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한 반면, 이 해 선동열이 감독을 맡은 [[KIA 타이거즈]]는 [[나지완]] 외에는 두 자릿 수 홈런 타자가 아예 안 나오면서 선동열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. 2017년 선동열 본인의 [[http://naver.me/50kMTSYj|인터뷰]]에 따르면, 세대교체를 원한 구단의 의중을 대변했던 일이라 밝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